2016년 3월 11일 금요일

향년과 방년, 그리고 묘령

 
 
3.1절 아침, 진짜사나이 여군 특집 재방송 시청 중. 여성 출연자의 나이가 소개되는 장면이었나? 하여튼 자막에 ‘향년(享年)’ 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더니 이미 잘못 쓰인 용어임이 네티즌들에 의해 지적된 상태였다. 다행이다.



享 (누릴 향)

‘享 (누릴 향)’은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높은 토대 위에 지은 집의 모양을 표현한 글자이다. 






아주 오래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신을 기리는 행사는 단순히 제사로 끝나지 않고 축제로 이어졌다. 오늘날 ‘축제’라는 단어에 ‘祭(제사 제)’를 사용하는 것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즉, 제사를 끝내고 제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축제를 즐기는 형상에서 ‘누리다’라는 뜻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글자의 쓰이는 대표적인 단어가 있다.

향락(享樂)

'즐거움을 누린다'는 의미이지만, 뉘앙스는 단순하지 않다. 번쩍거리고 휘황찬란한 조명과 네온사인, 휘청거리는 밤거리 같은 이미지가 연상된다. 어쨋건 이 단어가 오랫동안 이런 이미지로 사용되어 왔다.


향년 (享年)

그리고, 문제의(!) ‘향년(享年)’이 있다.  돌아가신 분의 나이를 언급할 때, 향년 OO세 라는 표현을 쓴다. 이 때의 ‘享年(향년)’은 ‘OO세까지 삶을 누렸다’는 의미가 된다. 멀쩡이 살아 있는 사람의 나이에 쓰는 말이 아니다.

방송에서 자막을 만드는 사람이 작가인지 PD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건 제작진은 ‘방년(芳年)’이라는 말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芳 (꽃향기 방)

‘草 (풀 초)’는 ‘풀’을 뜻한다. 艹와 艸 모두 같은 글자이다. 즉, 글자에 艹와 艸가 부수로 쓰이면 ‘풀’ 또는 ‘식물’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花 (꽃 화), 英 (꽃부리 영), 茶 (차 다) 등의 글자가 그 예이다.

‘苦 (쓸 고)’ 글자는 ‘쓴 맛’, ‘맛이 쓰다’ 등의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원래는 ‘쓴 맛 나는 식물’을 뜻하는 글자에서 의미가 확대된 사례이다.

즉, 방(芳)은  ‘식물의 향기’를 뜻하는 글자이다. 냄새가 아니라 향기... 좋은 이미지가 느껴진다.
남의 이름을 높여 부를 때 ‘방명(芳名)’이라고 하며, 이를 기록한 책이 ‘방명록(芳名錄)’이다.


방년 (芳年)과 묘령 (妙齡)

‘방년(芳年)’.. 20세 전후 여성의 나이를 칭할 때 쓰인다. 말 그대로 꽃다운 나이이다. 연관 검색어로 ‘묘령(妙齡)’이라는 단어도 보인다. 뜻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이다.

‘방년(芳年)’이 꽃향기처럼 푸릇푸릇하고 생기발랄함이 느껴진다면, ‘묘령(妙齡)’은 ‘신비로움?’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오묘(奧妙).. 미묘(微妙.. 교묘(巧妙.. 절묘(絶妙).. 묘기(妙技)..묘미(妙味)... 등등의 어휘에서 받은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妙(묘할 묘)가 무엇인가? ‘女’와 ‘小’를 합친 글자이다. ‘젊은 여자’는 오묘하고 이해하기 힘든 존재? 이 글자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젊은 여자’의 이미지는 그랬나보다.


바둑 용어.. 기사 & 기원 & 복기 & 장기 & 불계


 
<사진 출처 : SBS>
 
 

알파고의 능력은 이세돌을 비롯한 바둑 전문가들의 상상 이상 이었나보다. 얼마 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세돌은 아주 당연하게(!) 본인의 승리를 예상했었다. 실수로 한 번 정도의 패배는 있을 수 있다는 말에서 인류 최강의 여유도 느껴졌었다.   

이세돌 9단의 설레발(?)을 비난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심기일전하여 한번 정도는 이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리버스 스윕을 하면 더 좋고...

이래저래 지난 연말부터 바둑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시발점은 ‘응팔’의 최택 9단이었고, 이번 세기의 대결에서 그 관심이 폭발하며, 기어이 ‘불계’라는 단어가 검색어 1위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불계(不計)

바둑은 누가 집을 더 많이 만드는가를 겨루는 경기이다. 그래서 흑백 각각 집의 수를 세어 승패를 결정하는데, 굳이 카운트를 하지 않아도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불계(不計)’라는 용어가 나왔다.         

기왕 바둑 이야기를 한 김에 바둑에서 쓰이는 몇 가지 한자어를 찾아 봤다.

일단, 바둑을 뜻하는 한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棋 (바둑 기) = 木(나무 목) + 其(그 기 ; 음 역할)

碁 (바둑 기) = 石(돌 석) + 其(그 기 ; 음 역할)


위 두 글자의 차이는 ‘나무(木)’냐, ‘돌(石)’이냐의 차이이다. 그래서, ‘나무(木)’가 뜻 역할을 하는 ‘棋’는 나무로 만들어진 바둑판을, ‘돌(石)’이 뜻 역할을 하는 ‘碁’는 바둑돌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바둑 선수(?)나 바둑 두는 장소를 일컬을 때는 일반적으로 ‘棋’를 쓴다. 그래서 ‘기사(棋士)’이고 ‘棋院(기원)’이다. ‘碁士(기사)’나 ‘碁院(기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참고로 국어사전에는 각각 두 단어 모두 실려 있다.
 
‘기사’의 경우 동음이의가 꽤 많이 나온다. 정리하자면... 

  • 技士(기사) ... 운전기사
  • 技師(기사) ... 기술자, 엔지니어.. (예) 전기기사, 정보처리기사 등
  • 騎士(기사) ... 백마를 탄 기사
  • 記事(기사) ... 신문 기사

復碁(복기) 또는 復棋(복기)

대국을 마친 기사들은 본인과 상대방의 수를 처음부터 한 수 한 수 되짚어 보며 승패의 원인을 분석한다. 이를 ‘復碁(복기)’라고 한다. 바둑돌을 되짚어 본다는 의미이다. 


바둑과 장기

흔히 흑백의 돌이 경합을 벌이는 것을 바둑이라고 하고, 초나라와 한나라가 싸우는 게임을 ‘將棋(장기)’라고 하는데, 여기에 ‘棋(바둑 기)’가 쓰였다. 그래서 ‘바둑’의 어원을 찾아보니, 밭 모양의 판에서 돌을 이용한 놀이 (또는 게임)에 그 어원이 있는 것 같다.

다음은 http://blog.naver.com/finetree_/100175073613 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15세기의 “금강경삼가해”에 ‘바독’으로 표현됨. 또는  ‘바돌’이라고도 함.

밭(田) + 독(石) :  BAT + DOK -> BADUK

바독’을 ‘밭’〔田〕과 ‘독’〔石〕의 결합으로 보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돌’〔石〕을 ‘독’이라고도 하고(경상, 전라, 충남, 제주 지역에서는 ‘돌’을 ‘독’이라 한다.), ‘바둑’을 ‘바돌’이라고도 하기 때문에(경상, 전라, 충남 지역에서는 ‘바둑’을 ‘바돌’이라고도 한다.),

즉, 밭 모양의 판에서 벌이는 놀이 중에서도, 초나라와 한나라의 將軍(장군)이 경쟁하기 때문에 ‘將棋(장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맺음말

어떤 과학자가 그랬다.

“알파고는 감정이 없다, 이세돌 9단이 변칙 수를 쓰며 아무리 흔들어도 알파고는 상대방이 자기를 흔드는가를 느끼지 못한다. 그저 상대방의 수에 대응할 뿐이다."

변칙 수로 ‘의표를 찌르려는’ 의도를 상대방이 느껴야 되는데, 정작 알파고는 본인이 바둑을 두는지도 모르고 있다니 허탈하기도 하다.

그래, 그냥 축제일뿐이다. 최택 9단만큼 착하게 생긴 이세돌 9단이 굳이 결과에 연연하거나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2016년 3월 6일 일요일

종이접기 VS 오리가미

종이접기 VS 오리가미(?)

MBC 능력자들 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데, 종이 한 장으로 다양한 동식물을 만드는 사람이 나왔다. 작품 하나하나 볼수록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칼이나 가위 등의 도구를 전혀 쓰지 않고 종이 한장으로 이런 것들을 만들다니.... !!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에서는 꽤 대중화 되었나보다. 일본 용어는 ‘오리가미’라고 한다고 한다.

그게 무슨 뜻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 '능력자'는 "그냥 어원" 이라고 답을 하기에 직접 한번 찾아 봤다.

오리가미 折紙 (おりがみ)

일본어사전에는 ‘折紙’라고 나와 있다. ‘절(折)’은 ‘꺽다’는 뜻이고 ‘지(紙)’는 ‘종이’를 뜻하는 글자이지만, 이 한자어의 조합은 국어사전에는 없다.

扌 (손 수) + 斤 (도끼 근)

도끼를 손으로 잡고 나무를 자르는 동작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자르다’, ‘꺾다’, ‘접다’, ‘부러지다’ 등등의 뜻으로 쓰인다.

정리하자면, 이번 방송에서 소개된 ‘오리가미’는 ‘折紙(절지)’의 일본식 발음 (おりがみ)이다. 우리는 그냥 ‘종이접기’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Tip

‘折 (꺽을 절)’은 다음과 같은 단어에서 볼 수 있다. ‘절반(折半)’ ‘좌절(挫折)’ ‘절충(折衷)’ ‘요절(夭折)’ ‘골절(骨折)’ 등등...

재미있는 것은 ‘중절모(中折帽)’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형상을 하고 있어 이 글자로 표현했나보다.